2024. 9. 23. 15:43ㆍ책 읽고 끄적끄적
특별히 마음 가는 인물은 없었지만, 이 책에서 조명하는 인물이 '폴 고갱'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열정은 부족한 나의 소양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고통을 겪으면 사람은 오히려 쩨쩨해지고 작은 일에도 앙심을 품곤 한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과거보다 점점 더 겁이 많아지고 주저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내가 좀 더 용감하고 포용심이 많을 때는 그런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했었다. 그때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 몰랐던 것 같았다.
세상은 잔인해. 우리는 왜 사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 겸손하고 조용한 삶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해.
(중략)
단순하고 무지한 삶을 살고 싶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낫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순박하게 사는 것, 그게 삶의 지혜야.
찰스 스트릭랜드의 말이다. 생각보다 그 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겸손이나 단순한 삶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를 소설 속에서 찾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들은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서 하는 "삶의 지혜"라는 뜻에는 공감한다. 지혜와 명철은 다르다는 말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는 삶을 좀 더 편하게 사는 것 혹은 편리하게 사는 것이다. 조용하고 단순하고 무지한 삶은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복잡하고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담고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어쭙잖은 지식을 갖추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주목하는 인물인 찰스 스트릭랜드가 '폴 고갱'이라는 인상주의 화가라는 것이 신기했다. 그냥 읽을 때, 증권맨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마흔에 화가가 되기로 했다는 것에 재작년쯤 내가 갔던 미술전시 도슨트에게 들었던 화가의 특징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 전시를 떠올리며 읽고 있다가 하도 주인공이 이 작가를 칭송하는 표현이 많길래 궁금해서 검색해 봤더니 폴 고갱이라는 화가였다.
처음 이 전시에 갔던 이유는 모네의 그림을 좋아해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좋아한다.) 해당 전시에서 인상은 볼 수 없었지만, 모네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갔었다. 우연히 읽었던 칼럼에서 이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었다. 내용은 '인상파'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게 된 해돋이의 뒷이야기(?), 작가의 상황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당시 모네는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의 패전과 아버지의 죽음, 경제적 어려움, 작가로서 불안정한 미래 등으로 역경과 고난이 극심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때 피신 하기 위해 돌아간 고향에서 모네는 미래의 희망을 꿈꾸며 인상을 그렸다고 한다. 당시 나도 내 삶이 버거웠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네가 꿈꾸는 희망이 그림에 아름답게 표현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모네의 다른 작품도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며 작가와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모네는 현대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밝은 색감과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한다. 너무 복잡하고 현실적인 감각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이런 밝고 흐릿한 그림은 반대의 매력을 주는 것 같다.
고갱이 야수파 화풍이 드러나기 전, 약간 모네처럼 밝고 적당히(?) 흐릿한 그림을 그린 적 있다. 그 그림이 바로 '센강 변의 크레인'이다. 유일하게 그 전시에서 보고 또 보고 온 그림이었다. 모네의 수련이 메인이었던 전시였는데 오히려 수련은 색감은 아름다웠지만 나에게 너무 흐릿했다. 그래서 우연히 보게 된 고갱의 초기작을 즐기고 왔다. 그러면서 당시 도슨트의 고갱이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짧은 이야기도 나름 낭만적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작가의 성격에 조금은 나의 동심이 깨지는 기분이다.....
책과 다른 이야기가 길어졌다. 다시 찰스 스트릭랜드와 고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고갱의 야수파적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원색적이고 강렬한 느낌이 어색하고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타히티에 가서 정말 원하던 예술의 영감이나 정신을 구축했다는 것에서 거부감을 많이 줄었다. 작가의 사고나 가치관에 완전히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소설에서 고생하던 인물이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았다는 것에 대한 어떤 인류애적 응원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다.
스트릭랜드 이외에 작가와 소설에서 관찰자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쉽지 않다. 이 작가의 표현 방식은 여성에 대한 조롱이나 비아냥이 정말 두드러진다고 느꼈다. 여성을 감정적이고 속물적인 존재로 바라보거나 타인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존재로 생각한다. 아마 원본은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스트릭랜드도 못지않은 여성 혐오의 대가라고 느꼈다. 여성을 상당히 도구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예술만 고귀하고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반사회적 성격을 가졌다. 실제로 고갱의 성격이 어느 정도 포함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왜 고갱이라는 작가의 작품에는 빠지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우연적인 취향의 엇갈림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성향이 작품에도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이런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성향과 태도가 정말 비호감이었다. 자신의 부인을 떠날 때까지는 그래도 그의 어떤 예술적 정신을 이해해 보려고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성격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히티에서 자기 자식 나이의 어린 소녀와 다시 결혼하고 아이까지 갖는 것이 정말 역겨웠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끈질김은 존경스러웠지만 인간적으로는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지만 이 소설에서 달이라든가 6펜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해설에 따르면 달은 광기 어릴 정도인 예술의 극치를 말하고, 6펜스는 세속적인 명성이나 갈망을 말한다고 한다. 광기 어린 예술의 열정은 정말 혐오스러울 정도로 잘 느껴졌다. 그런데 작가가 표현한 6펜스의 상징인 세속적인 것들에는 공감되지 않았다. 작가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에게 동의해주고 싶지 않았다. 난 주인공이나 스트릭랜드가 보이는 예술이 가장 고귀하고 사회적 행동이나 태도는 무시되는 것이 오히려 세속적인 명성에 잠식된 인간들 같아서 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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