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3. 14:51ㆍ책 읽고 끄적끄적
나는 카뮈의 소설이 맘에 든다. 이 소설가의 생각과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페스트에서도 리유와 타루의 생각과 가치관에 공감했다. 또한 내 생각도 많이 정리할 수 있는 소스를 주었다.
인상 깊게 본 인물은 아무래도 "타루"라는 사람이다. 그는 실존주의 이념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나는 이 인물이 소설에 처음 등장할 때 꽤 큰 오해를 했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이지..... 나는 오히려 수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이윤 없이 도시의 재난을 돕고 페스트 시국을 기록한다. 난 정말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몰래 페스트균을 도시에 살포해 일종의 사회 실험을 위해(?) 혹은 사기업의 약효 실험을 하러 온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봉사하고 사람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 원하는 삶이란 일종의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나 반항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야 조금 실존주의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대학 입시 시절 논술전형을 보기 위해 논술학원에 다니며 여러 이념에 대해 공부하고 상황에 맞춰 해석하는 문제를 많이 봤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근데 타루라는 인물을 통해서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완벽히 설명은 못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특정 이념에만 복종하지 않고 의심하고 반항하는 사고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을 그동안 어떤 완벽한 이념이나 진리를 찾기 위해 살아온 것 같다. 혹은 사람들이 이미 내려놓은 진리를 사회 상황에서 해석하고 대입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이념과 생각들이 갖는 모순과 결핍에 혼란스러워했다. 혹은 약간의 고집과 외면으로 내 인생을 낭비하기도 했다. 여튼 그래도 이 책은 이런 내가 평생 고민 해오던 것들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페스트라는 질병으로 도시를 잠식했지만, 병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다. 류라는 의사가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느꼈는데, 이 사람이 마치 신처럼 모든 상황을 정의내리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 사람을 굉장히 싫어하기도 하고 해서 만약 그런 인물이었다면 이 책을 그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카뮈라는 작가에 꽂힌 것 같다.
작가도 말한 부분이지만,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회 재난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양상을 나타낸다. 누군가는 부정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를 이용하고 누군가는 적응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중 부정하는 인물은 파견기자 랑베르, 적응하는 사람들은 리유 의사와 타루 등으로 보여진다. 랑베르는 결국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인물이 되긴 하지만 초반 팬데믹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에게 조금 분류되지 않는 인물은 '파늘로 신부'였다. 그는 보건대에 자원하고 사람들에게 종교적 위로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무교인 나에게는 그의 설교가 어딘가 불편했다. 현재 오랑시에 닥친 위협을 마치 종교적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기분이었다. 당시 상황을 오히려 계속 신경쓰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는 것도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고 힘들지만, 이것을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요소라는 말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페스트라는 우연한 질병에 대한 어떤 인간의 죄의식을 만드는 기분이었다. 카뮈의 소설에서 나오는 종교인들은 나에게 조금 불편함을 주는 것 같다. 이방인의 신부님에게 느낀 어떤 위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라던가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나 불호를 가진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그런 종교들의 역할이 나는 인간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사회 통합이나 어떤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데 적합한 사상이나 이념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이기적으로 굴거나 잔혹해지는 것을 많이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적 위로와 의탁하기에도 좋은 존재라고 본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에만 기대기에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고도화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좀더 강력한 존재가 필요하고 정신적 의탁이 필요한 상대라면 신이라는 존재도 나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코타루라는 사람을 보자면, 이 사람은 소설에서 범법자로 등장한다. 시대 흐름에서 기회 노려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가 없어보이는 요소같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혹은 소설속 배경은 수정 자본주의다. 말그대로 자본이 모든걸 해결해준다고 보지 않고 사회적 복지와 상호적 호혜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는 행동은 문제가 된다.
또한 페스트를 겪는 오랑시민들에 대한 코타르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자신이 페스트라는 질병으로 죽을 뻔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으면서 타인이 겪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 축소하여 생각한다. 이런 모습에서 참 인간이란 존재는 참 다양하구나를 느낀다. 타루나 리유같은 인물이 있는 반면 코타루 같은 인물도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이 삶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참 나약한 인물일수록 이기적인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당장의 이익에 넘어가서 이득을 취하지만 곧 그것을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분명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나약하면서도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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