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7. 21:32ㆍ책 읽고 끄적끄적
주인공을 도와주는 모든 어른들이 모두 고마웠다. 아직 어리고 약한 아이에게 그토록 견디기 힘든 현실을 안겨주니 말을 절 수밖에....
주인공의 엄마와 약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의 애인과 함께하는 생활은 아마 끔찍했을 것이다. 종종 나오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읽기 힘든 묘사였다. 이 책을 다 읽은 계기도 내가 다시 정서적으로 약해졌기에 힘을 얻고 싶어서 오랜만에 다시 펼친 것이었다. 고맙게도 소설 속 주인공은 힘들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도와준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마치 내가 위로받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복하는구나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이 내용이 사실이든 픽션이든 상관없다. 그냥 나에게 어떤 믿음을 준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받고자 하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방에 틀어박혀 계피 맛 사탕을 아껴먹는 장면이다. 두 개밖에 없는, 그 오래되어 탈이 날 수도 있는 사탕에 의지하고 기댄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멘다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 아이가 제발 그 시간을 버텨주기를 바랐다. 계속 글을 읽으며 조금만 더 참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주기를 기도했다. 그에게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계피 맛 사탕은 교정원에 다니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께서 주신 것이다. 할머니는 주인공을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며 매번 자신의 아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우가 너무 따뜻하고 무조건적이어서 종종 눈물이 난다. 어떠한 악의도 없는 단 한 방울의 미움도 없는 따스함이 너무 고마웠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물론 아들을 사랑하고 "우리 아들~" 하며 살갑게 말하지만, 그 태도가 항상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항상 주인공에게 살갑고 따뜻하다. 어떠한 불순물도 없는 맑은 마음이다. 참 쉽지 않은데. 주인공이 말한 조금만 잘해줘도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너무 공감이 갔다.
어린 시절 나도 매일이 전쟁이다 보니 나에게 조금의 평화만 주어져도 마음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불규칙적인 반응에 두려움을 갖는다. 나도 물론이었다. 내 부모의 상황을 보고 할 말을 가려하거나 겁을 먹었다. 가장 잔인한 건 일방적인 다정함에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정에 목말랐었고 가끔 오는 그 다정은 나에게 치명적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비난과 짜증보단 다정이었던 것 같다... 이 평화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착한 자식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것들보다 지금 부모와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했다. 다음날 아빠가 나에게 웃으며 다정하게 말 걸어주기를 바라는 아침. 나는 그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항상 노력했었다.
독서의 장점은 나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에 있는 듯하다. 종종 내가 왜 이렇게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의 평화를 위해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큰 소리 내거나 갈등이 생기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많이 불안해하고 그런 갈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인이 된 지금도 아버지가 전화로 누군가와 큰소리를 주고받으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버지가 내는 큰소리는 나를 얼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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