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니까 조용히 해줄래?^^ [책: 내가 말하고 있잖아_ 전용준 장편소설]

2024. 9. 7. 21:32책 읽고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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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말을 더듬는 인물은 그간 정용준 소설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그 내면 풍경을 열네 살 소년의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언어적 결핍에서 비롯된 고통과 고투의 과정을 한층 핍진하게 보여 준다. 언어를 입 밖으로 원활하게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재난과도 같은 상황으로 인해 소년은 가족은 물론이고 학교, 친구 등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배제된 채 유령처럼 겉돈다. 스스로를 깊이 미워하면서, 또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향한 희미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등단 이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굴지의 문학상을 석권하며 고유한 시선과 자리를 만들어 온 정용준 작가가 오랫동안 구상, 집필, 퇴고한 이야기다. “타인의 삶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허물어 가는 섬세한 감정적 파동의 기록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는 말은 황순원문학상 수상 당시 어느 심사위원의 평가이지만, 이는 정용준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말인 동시에 그 정점이라 할 만한 이번 소설에 대한 정확한 예언이기도 하다.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은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짓고 마음속에 길을 내며 세상과 연결되는 자신만의 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타인의 삶에 대한 다정한 이해를 경유해 자신의 삶에 대한 뜨거운 긍정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짧은 여정이다. 이 여정을 함께하는 독자들에게 정용준이라는 세 글자는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각인될 것이다.
저자
정용준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20.06.26

 

 

주인공을 도와주는 모든 어른들이 모두 고마웠다. 아직 어리고 약한 아이에게 그토록 견디기 힘든 현실을 안겨주니 말을 절 수밖에....

주인공의 엄마와 약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의 애인과 함께하는 생활은 아마 끔찍했을 것이다. 종종 나오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읽기 힘든 묘사였다. 이 책을 다 읽은 계기도 내가 다시 정서적으로 약해졌기에 힘을 얻고 싶어서 오랜만에 다시 펼친 것이었다. 고맙게도 소설 속 주인공은 힘들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도와준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마치 내가 위로받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복하는구나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이 내용이 사실이든 픽션이든 상관없다. 그냥 나에게 어떤 믿음을 준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받고자 하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방에 틀어박혀 계피 맛 사탕을 아껴먹는 장면이다. 두 개밖에 없는, 그 오래되어 탈이 날 수도 있는 사탕에 의지하고 기댄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멘다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 아이가 제발 그 시간을 버텨주기를 바랐다. 계속 글을 읽으며 조금만 더 참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주기를 기도했다. 그에게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계피 맛 사탕은 교정원에 다니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께서 주신 것이다. 할머니는 주인공을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며 매번 자신의 아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우가 너무 따뜻하고 무조건적이어서 종종 눈물이 난다. 어떠한 악의도 없는 단 한 방울의 미움도 없는 따스함이 너무 고마웠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물론 아들을 사랑하고 "우리 아들~" 하며 살갑게 말하지만, 그 태도가 항상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항상 주인공에게 살갑고 따뜻하다. 어떠한 불순물도 없는 맑은 마음이다. 참 쉽지 않은데. 주인공이 말한 조금만 잘해줘도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너무 공감이 갔다.

어린 시절 나도 매일이 전쟁이다 보니 나에게 조금의 평화만 주어져도 마음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불규칙적인 반응에 두려움을 갖는다. 나도 물론이었다. 내 부모의 상황을 보고 할 말을 가려하거나 겁을 먹었다. 가장 잔인한 건 일방적인 다정함에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정에 목말랐었고 가끔 오는 그 다정은 나에게 치명적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비난과 짜증보단 다정이었던 것 같다... 이 평화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착한 자식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것들보다 지금 부모와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했다. 다음날 아빠가 나에게 웃으며 다정하게 말 걸어주기를 바라는 아침. 나는 그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항상 노력했었다.

독서의 장점은 나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에 있는 듯하다. 종종 내가 왜 이렇게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의 평화를 위해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큰 소리 내거나 갈등이 생기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많이 불안해하고 그런 갈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인이 된 지금도 아버지가 전화로 누군가와 큰소리를 주고받으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버지가 내는 큰소리는 나를 얼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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