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8. 02:11ㆍ책 읽고 끄적끄적
주인공의 살인 계획과 이행, 그리고 용의자로 의심되고 자백하기까지의 과정이 꽤 긴장감 있고 재밌었다. 약간 추리소설 읽는 느낌이었다.
"소냐"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소설에서 그녀는 성녀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 그녀는 가난한 집안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성을 파는 일을 한다. 소냐의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냐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춘을 하게 된다.
종종 성녀와 창녀는 통념적 측면에서 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창녀와 성녀가 다른 가치나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명을 위해 이분법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런 측면에서 소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다른 성격을 가진 여성이다. 무능한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해서 위험한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술값을 달라고 나타난 아버지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돈을 준다. 사실 그의 아버지에게 나무란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소냐는 현실적이기도 하고 삶을 묵묵히 감내하는 강인함도 있는 사람 같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고백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한다. 그런 면에서 정말 성인군자 같은 인물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끝내 라스콜리니코프의 위험한 사상을 성찰하게 만드는 것도 소냐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 쓰셨죠? 범죄를 저지르고 나면 늘 질병이 따른다는 주장을 하셨더군요. 제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범죄에 대한 당신의 사상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떠한 범죄든 그걸 서슴없이 해치울 권리를 가진 특별한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법률 같은 것은 없다.'라고 암시하셨더군요. ~ 즉 이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과 매우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평범한 사람은 법이 정해 놓은 규범에 복종하며 살고 법을 파괴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주장이셨죠. 제가 잘못 해석했나요?"
이 부분을 읽으며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사상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인간 존재 가치와 생명에 차등을 두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약간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을 터부시 하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세상에는 완벽한 기준이 존재하기 어렵다. 또한 그에 걸맞은 완벽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그런 기준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불완전한 기준에 따라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게 만든다면 인간 존엄성에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은 참 읽기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닥터 지바고'라는 소설을 읽은 적 있는데 그때도 너무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이름도 낯설어서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 정말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 권을 정말 오래 읽었다. 이번에도 이름이 길고 많았지만 이름의 특징을 외워서 읽으니 금방금방 읽게 돼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러시아 소설의 특징은 소설 배경에 등장하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상에 대한 성찰이 자주 등장한다고 느꼈다. 이 소설에서는 우생학스러운 범죄 사상이 등장한다. 이는 과거 계급사회를 생각나게 한다. 나름 주인공은 사회의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한 방안이었지만, 상당히 위험성이 많은 사상이었다. 그리고 남용되기 쉽다.
지바고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의 모순이나 부족함에 대해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었다. 지금은 수정 자본주의라고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시장만능주의적 사고가 심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이 사회에 정 떨어진다. 시장의 논리로 정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자본주의 논리가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수정자본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느껴지지고 않을 때가 있다. 물론 계속해서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다양한 정책을 만들고 있지만 이런 자본주의에 부정적인 측면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많기에 완전 반대에 끌리는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긍정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당시 지바고를 읽고 내가 갖고 있던 순진한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다. 러시아 소설에는 이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자본가들의 권력을 빼앗아 프롤레타리아에게 나누어 주는 생각은 아름다운 사상이지만 분명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소설을 읽고 여러 해석들을 찾아보다가 한 유튜버의 감상평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의 '죄와 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활용하여 등장인물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해석이었다. 소설에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인물들로 '루진', '스비드리가일로프', '라스콜리니코프'가 있었다. 먼저 루진은 명예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약혼이 깨지며 잃었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가난한 약자를 이용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룸메이트에 의해 망신을 당하며 사회적으로 처벌받는다고 해석한다. 다음으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주인공의 동생인 두냐에 대한 사랑을 강제로 얻으려고 하지만 결국 원하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상대에게 거부당한다. 이로 인해 자살을 하는데, 이것을 해당 유튜버는 육욕에 대한 죄를 죽음을 통해 육체적으로 처벌을 받는 전개로 해석한다. 다음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사상에 대한 증명으로 살인을 하지만 결국 그 사상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법적 처벌을 받는다. 이러한 자신의 사상에 대한 인정받으려는 욕심으로 발생한 죄와 그에 따른 벌이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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